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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하이 마스터스 이변

Bergs vs Alcaraz

Oct 12, 2026
2026년 상하이 마스터스 이변

이긴 사람이 제일 놀란 경기

보통 Alcaraz를 이기면 라켓 던지고, 드러눕고, 포효한다.

Bergs는 이번 경기에서 이기자마자 카메라 렌즈에 이렇게 썼음.

"What just happened?"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임?)

이긴 사람이 제일 어리둥절한 경기. 본인 말로는 경기가 끝나고도 아직 경기 속에 빠져 있어서 크게 기뻐할 정신도 없었다고 함.

상하이 마스터스 3회전. 세계 39위 Zizou Bergs가 2번 시드 Carlos Alcaraz를 7-5, 7-6(4)로 잡았음. 2시간 3분. 알카라스는 일주일 전에 도쿄에서 우승 트로피 들고 왔는데도 말이다.

Bergs Zizou

벨기에 Lommel 출신, 1999년생.

  • 빅서버 + 네트 대시형. 서브 넣고 앞으로 뛰어드는 게 주특기
  • 2025년에 커리어 첫 ATP 결승 두 번
  • Djokovic의 평가: "a lot of firepower in his game" (화력이 엄청난 선수)
  • 단점이라면 기복. 미국 테니스 매체가 "영감 넘치지만 들쭉날쭉한" 선수라고 쓴 적도 있음

그리고 Alcaraz와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음. 첫 만남은 작년 도쿄 500, 결과는 4-6, 3-6 완패. 1년 만에 상대 전적 1승 1패를 만든 셈.

Bergs한테 상하이는 그냥 대회가 아니다.

작년 상하이에서 Bergs는 커리어 첫 마스터스 8강에 올랐음. 19번 시드 Cerundolo를 잡고, Diallo는 3세트 타이브레이크 끝에 잡았음. 8강 상대는 Djokovic.

결과는 3-6, 5-7로 졌는데, 이 경기도 재밌었음. Djokovic이 2세트 서빙 포 더 매치를 잡았는데 Bergs가 브레이크하고 5-5를 만듦. 서빙 포 더 매치에서 브레이크. 1년 뒤 이 장면은 반대로 돌아오게 된다.

그 경기에 대한 본인의 감상평:

"I was playing the name more than the player himself." (나는 선수가 아니라 '이름'이랑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같은 상하이에서 또 하나의 '이름'을 만남. 대진운이 안좋다고 해야하는건지… 여하튼. 상하이를 제일 좋아하는 마스터스냐는 질문엔 결과만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답함.

 

경기 통계

전체 154포인트 중 Bergs 81, Alcaraz 73. 딱 8점 차이. 브레이크도 3번 vs 2번.

스코어는 2:0 완승인데 포인트는 거의 반반. 그러니까 이 경기는 힘으로 찍어 누른 경기가 아님.

어디를 찌르느냐로 갈린 경기였음.

 

예를 들면, 1세트 Alcaraz 세컨 서브 성적표가 이랬음.

  • 세컨 서브 포인트 승률 27% (15개 중 4개)
  • 더블폴트 2개
  • Bergs의 세컨 서브 리턴 승률 73%

Alcaraz가 세컨 서브를 넣는 순간 거의 Bergs 포인트. 세컨 서브가 아니라 Bergs한테 주는 선물이었음.

첫 서브는 둘 다 74%, 73%로 비슷하게 지켰으니까, 1세트는 결국 세컨 서브 싸움에서 갈림. Bergs는 브레이크 기회 3번 중 2번을 살려서 7-5.

웃긴 건 Bergs 첫 서브도 1세트엔 57%밖에 안 들어갔다는 것. 근데 에이스 5개, 더블폴트 0개. 들어가기만 하면 흉기다 이정도면.

 

이 경기 최고의 장면은 여기라고 봄.

 

역시 알카라스는 2세트에 바로 각성해서 세컨 서브를 완전히 고쳐 옴. 11개 중 10개를 따냄. 27% → 91%. 더블폴트 0.

그럼 Bergs는? 세컨 서브 리턴이 73%에서 9%로 막히자, 바로 첫 서브 리턴으로 표적을 바꿈. 1세트 27%였던 첫 서브 리턴 승률이 2세트엔 41%. 덕분에 Alcaraz 첫 서브 승률은 73%에서 59%로 뚝.

Bergs 말로는 계획을 세우는 것과 실행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고, 상대가 뭘 하는지 계속 보면서 맞춰가야 한다고 함. 테니스는 두뇌싸움이 진짜 맞나보다…… 신기함.

2세트 5-4, Bergs의 서빙 포 더 매치. 그리고… 브레이크당함.

작년 상하이에서 Djokovic 상대로 본인이 했던 걸, 1년 뒤 같은 대회에서 거꾸로 당한 셈. 2세트에 Bergs가 내준 브레이크 포인트는 딱 하나였는데 하필 그게 이거였음. 보통 이러면 멘탈이 갈려야 할텐데, Bergs는 타이브레이크에서 3-1로 먼저 치고 나갔음. 중간에 더블폴트로 4-4까지 쫓겼지만, 거기서 3점을 연달아 가져와 7-4로 끝내버렸다.

Bergs 말로는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라서 그냥 받아들이고 다음 게임만 생각했다고 한다. 이미 한 세트 따놨으니 절망할 이유가 없었다고. 역시 기세는 중요하다. 첫 세트를 따야한다.

 

토스가 사기

Bergs 첫 서브 타점을 찍은 그래픽인데, 초록이 T(센터), 파랑이 와이드 서브임. 보면 두 색이 거의 같은 자리에 뒤죽박죽 섞여 있음.

이게 무슨 뜻이냐면, 토스만 봐서는 어디로 올지 절대 모른다는 것. 포커로 치면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상대. Alcaraz 입장에선 패를 읽을 방법이 없었음.

그 결과가 이거임. Bergs 첫 서브 47개 중 Alcaraz가 따낸 건 두 세트 통틀어 단 10점. 2세트만 보면 Alcaraz의 첫 서브 리턴 승률은 17%. 세상에서 리턴 제일 잘하는 선수 중 한 명이 6개 중 1개 꼴로 겨우 따냈다는 얘기임. 개인적으로 이 경기 MVP 숫자다.

최종 감상평

오늘 Bergs의 킥은 와이드 서브였음. 각도가 엄청 실려서 공이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도망가는데, Alcaraz가 쫓아가도 힘을 실어서 받아칠 수가 없었음. 확실히 이번엔 와이드서브로 재미 좀 본 것 같다.

문제는 똑같은 토스에서 T로도 온다는 것. 와이드 대비해서 미리 옆으로 가 있으면 T로 꽂히고, 가운데 서 있으면 와이드로 도망가고. 숨겨진 토스 + 각도 실린 와이드, 리터너 입장에선 답이 없는 조합.

코트도 Bergs 편이었음. 본인 말로는 올해 상하이 코트가 작년보다 꽤 빨라졌다고 함. 빠른 코트에서 각도 실린 서브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서브 넣자마자 네트로 달려드니 Alcaraz는 리듬 잡을 틈이 없었을 것.

Alcaraz가 이렇게 무기력해 보인 것도, 경기 중에 "Hostia!" 하고 소리 지르는 것도 처음 봤음. 스페인어로 우리말 "아 진짜!" 정도의 감탄사인데, 미소천사 알카라스 치고는 과격한 표현이라고 봐야함.

Alcaraz는 리턴할 때 공이 이랬다고 함.

"Sometimes it bounced very high, sometimes it shot through low." (어떤 땐 엄청 높이 튀고, 어떤 땐 낮게 깔려 들어왔다.)

공이 더 크게 느껴졌고 끝까지 적응을 못 했다고. 체인지오버 때 공 때문에 짜증 난 모습도 보였다고 함. 물론 본인도 핑계 대고 싶진 않다고 먼저 깔고 시작함. 자기 경기력이 정말 안 좋았고, Bergs가 좋은 레벨을 보여줬다고. 리턴이나 프레임샷이 운 좋게 들어간 장면도 있었다는 말은 덧붙였지만. Bergs도 이건 부정 안 함. 전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실행이고, 필요할 때 약간의 운까지 다 맞아떨어진 날이었다고 한다.

일주일 전 도쿄 우승자의 표정은 어두웠음. 이번 패배가 많이 아프다고, 모든 게 실망스러웠다고 함. 그리고 이 한마디.

"Taking the positive things from today is really difficult." (오늘 경기에서 긍정적인 걸 찾는 게 정말 어렵다.)

머릿속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해서 며칠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11월 파리 마스터스 전까지 팀이랑 다시 정비하겠다고 했음.

이긴 사람의 한마디

Bergs는 이 경기의 진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함.

"I often have too much respect for these guys." (나는 이런 선수들을 너무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자기 문화의 일부고 그 자체는 자랑스럽다고. 어릴 때 TV로 Djokovic, Nadal 보면서 자란 세대라, 막상 코트에서 만나면 공을 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이길 준비가 마음속에 돼 있어야 한다는 것. 벨기에 사람 특유의 겸손함 때문에 이런 선수를 이길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건 나도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다.

근데 이제는 그냥 상대를 힘들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이길 수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드디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코치 Jan de Witt 얘기로 그는 한 번에 크게 점프하는 타입이 아니라 작은 걸음으로 조금씩 가는 선수고, 코치가 그걸 잘 안다고 한다. 이번 승리도 그 작은 걸음 중 하나일 뿐, 목표는 그대로 "계속 나아지는 것"이라고. 세계 3위를 이겨놓고 작은 걸음이라니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그 와중에 코치 아저씨 엄청 푸근하게 생겼음)

 

후… Alcaraz가 여기서 떨어지면서 Zverev가 2026년 연말 세계 1위를 확정했다고 함. 독일 선수 최초라고! Bergs는 자기 커리어 최고의 승리를 거두면서 남의 역사까지 써준 셈인데…보통 이렇게 초반 혈투로 시드 선수를 이기고나서는 허무하게 비시드 선수한테 져서 승리까지 가기가 쉽지 않던데; 이번 상하이 마스터스 결과가 기대된다.

 

참고한 기사

  • Bergs challenges Alcaraz: "The balls were the same as in the previous tournament" — Puntodebreak
  • 경기 통계: Tennis TV / ATP 앱 Match St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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