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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하나 찾기 어려운 개발도상국 테니스 (페루)

Feb 27, 2026
코트 하나 찾기 어려운 개발도상국 테니스 (페루)

간만에 글을 쓴다. 이곳은 페루.

비행기로 경유시간 포함 24시간 정도 걸려 리마에 도착했지만 나의 최종 목적지는 리마가 아니라 아레키파(Arerquipa)라는 도시다. 광산업이 무척 발달해 페루 제 2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 보통은 마추픽추가 있는 쿠스코가 더 큰 도시라고 생각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우선 아레키파라고 한다 (대사관 약황에 따르면..^^)

보통의 여행객도 쿠스코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중남미를 꽤 안다고 생각했던 나도 아레키파라는 도시가 존재하는 지 몰랐다 (;;) 부끄러운 일이다. 어쨌든 가족의 임시 거주 이슈로 아레키파에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페루는 아주 큰 국가다. 놀랍게도 수도 리마에서 아레키파까지 가려면 버스로 16시간정도고, 비행기로는 1시간 40분정도 걸림. 아레키파에서 쿠스코는 꽤나 가까운 편이고 또 푸노라는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도시도 나름 가까운 남부도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번에는 너무 긴 여정이라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쿠스코,리마, 푸노를 모두 다 돌아야 하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테니스 라켓은 별도로 챙겨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레키파에 테니스코트가 있을지, 있다면 라켓을 빌려서라도 칠 수 있지 않을지 너무 궁금한 것이다. 테친자란 이런 것이다.

 

검색 결과 테니스를 칠만한 곳은

(1) Olympus Tennis Camps

Av. Dolores 125, José Luis Bustamante y Rivero 04002

https://maps.app.goo.gl/WcbstSMuaWJqWT1a6

아레키파의 화산 (미스티)가 보이는 아주 멋진 클레이코트가 있는 곳. 나는 머무는 곳이 너무 멀었기 때문에 이곳은 별도로 방문하지 않았지만, 아레키파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큰 코트가 있는 곳은 드물고 (사실상 없고) 테니스를 치는 인구가 아레키파에서는 극도로 적기 때문에 socio (회원제)로 운영한다고 한다. 가격이 얼마인지는 물어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보통 socio로 운영하게 되면 연간 회원비를 내고 테니스 코트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역시 남미는 보통 다 클레이코트라더니 어김없이 적색 코트였다.

 

그 다음은 내가 방문한 곳.

(2) Arequipa Golf Club

Pasaje El Golf 205, Socabaya 04012

https://maps.app.goo.gl/x9z5nj8PToYt8qWY9

소카바야에 있는 골프클럽. 왠 골프클럽에 테니스코트냐 할 수 있는데 이 곳은 아레키파의 유일한 골프클럽으로 ;; (이 넓은 땅에) 이름만 골프클럽이지 나름 모든 스포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종합 스포츠 타운(?) 이다. 문제는 내가 한국에서 그랬듯, 전화를 걸거나 웹사이트를 통해 간단히 문의할 수 있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구글맵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열 번. 받지 않는다.

이쯤 되면 테니스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점점 이상해지는 느낌이다. 굳이 안 쳐도 되는 운동을 왜 이 머나먼 땅까지 와서 하려고 하는지… 결국 직접 찾아갔다. 철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잡혀갈 뻔 했는데 웃긴건 휴무일이었다. 월요일은 쉰다고 한다.

하지만 테친자의 세계에서 휴무도 장애물이 아니다.

다음날도 택시를 타고 이 외곽에 있는 골프클럽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했다. 골프장 깊숙한 곳, 정말 숨겨놓은 것처럼 있는 클레이 코트 6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코트 위에는 아이들만 있었다. 성인은 없고, 게임은 없고, 랠리도 없다. 결국 나는 9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사이에 껴서 단체 레슨을 받게 됐다. 개인레슨이 가능하기는 한데, 테스트를 어느정도 해보시고 코치님이 전화번호를 주면 둘이서 조정을 해야한다고 한다. 단체레슨의 가격은 1시간~1시간 30분정도 해주시고 40솔. 한화로 약 16,000원. 이쯤 되면 가격은 합리적이다. 웃긴건 개인레슨은 같은 시간에 50솔 (20,000)정도로 무조건 개인레슨을 받는 것이 이득이다. 코치님은 한 분 혼자 계신다. 크리스티안은 엄청 열정적이라 내가 이상한 곳에 공을 날려도 달려가서 발리로 받아준다. 아이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는 씩씩하게 포핸드를 쳤다.

원한다면 이 골프장의 관리자인 호세마리아에게 왓츠앱으로 문의를 해봐도 좋다. 참고로 이메일, 전화보다 문자가 빠르다. 전화는 죽어도 안받더라.

 

여하튼 아레키파에서 골프칠 수 있는 곳 두 곳을 소개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종종 테니스를 꽤 ‘접근 가능한 운동’이라고 착각한다. 라켓 하나 들고 코트만 있으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코트만 있으면”이라는 전제가 생각보다 무겁다는 데 있다.

중남미 중에서도 꽤나 발전한 국가인 페루의, 꽤나 발전한 도시라는 아레키파. 그리고 한국의 몇십배에 달하는 국토 면적. 그런데도 이렇게 칠 곳이 없다니. 왜 테니스는 이렇게까지 하기 어려운 운동일까?

아레키파를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공원마다 농구 코트가 있다. 아이들이 특히 정말 많이 게임을 하고 있다. 공 하나만 있으면 되고, 누구든 끼어들 수 있다. 그런데 테니스는? 코트가 있어야 하고, 라켓이 있어야 하고, 공도 따로 있어야 하고, 상대가 있어야 하고, 심지어 그 상대는 ‘어느 정도 맞는 수준’이어야 한다.

이쯤 되면 운동이 아니라 조건의 집합이다. 그리고 이 조건들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환경.

공공 자원 입장에서 보면 테니스 코트는 비효율적인 선택이다. 게다가 유지비도 든다. 클레이 코트는 관리가 필요하고, 하드코트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 이런 조건에서 개발도상국의 도시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뻔하다.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는 것, 더 적은 비용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공원에는 농구 코트가 생기고, 테니스 코트는 골프장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조건이 맞아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어쩌면 테니스가 지금도 '고급 스포츠'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의지의 스포츠가 아니라, 환경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페루에 가면 프라이빗 클럽을 찾아보시라….. 이거다. 여긴 아레키파 골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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